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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20년 역사의 모리오카 냉면 <삼천리>, <명월관>, <뿅뿅사>,<식도원>


mbc스페셜 8월22일 모리오카 냉면

-“냉면처럼 맛있는 게 없어요.”
-“쫄깃쫄깃하고 매콤한 맛”
-“일주일에 두 번은 먹어요.”


일본엔 지금 냉면 열풍이 불고 있다!!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닌 ‘모리오카냉면’이라 불리는 이 음식은 한국의 냉면과 모양부터 다른데... 김치가 기무치가 된 것처럼 또 일본이 우리나라 식문화를 모방한 것인가!?

아니다!! 그 맛은 재일동포 1세 양용철 씨가 기억하는 한국의 냉면 맛에서 비롯된다.
방송사와 잡지 등 유명세를 타고 주목받고 있는 이 냉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험난한 재일동포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8.15를 맞아, 해방 이후에도 일본 땅에 살며 점차 변화해가는 재일동포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생각하는 조국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본다.  
 

-모리오카 냉면이란?
메밀을 전혀 쓰지 않고 전분과 밀가루로만 만든 굵은 면발에 (마치 쫄면과도 비슷하다) 한 사골 육수를 붓고 깍두기를 넣은 냉면.
 
                         


1.일본은 지금 냉면 열풍으로 후끈!! 
  “냉면 먹기 위해 한 시간도 기다려요”


  우동, 소바, 라면 등 일본을 대표하는 면 요리들 사이에서 살아나 일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면요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리오카냉면’이다. 이미 이 냉면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의 대표특산물이 되었고 최근 도쿄의 번화가 긴자에서도 한창 인기몰이 중이다. 긴자의 회사원들이 줄을 서 먹는 <뿅뿅사> 냉면, 사장은 재일동포 2세 변용웅(60) 씨다. 하루 60~70명이 예약을 하는 건 기본이고 한 달 후의 예약도 꽉 차있는 상태다. 일본 사람들은 흥겨운 모리오카냉면 노래와 춤으로 냉면 예찬을 하기까지 하는데... 모리오카 시에서는 시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며 ‘냉면 맵’도 만든 상태다. 냉면장사를 기업화한 변용웅 씨는 ‘인스턴트 모리오카냉면’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연매출 200억원의 성공신화를 이룬 그의 숨겨진 ‘모리오카냉면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메밀로 검고 질긴 면, 진한 육수, 매운 김치’ 조국의 냉면에 대한 ‘혀의 기억’
  “고무처럼 질긴 걸 누가 먹냐 했었어...”


 모리오카냉면의 역사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일동포 1세인 양용철 씨는 어린 시절 고향 함흥에서 먹었던 조국의 냉면 맛을 잊지 못해 모리오카에 냉면 집 <식도원>을 열었다. 매운 맛을 좋아했던 양 씨는 냉면에 깍두기를 듬뿍 넣었다. 차가운 국물, 고무처럼 질긴 면, 매운 깍두기. 그 맛에 익숙하지 않던 일본인들은 욕을 하고 나가기도 했지만 양씨는 고집스럽게 냉면 만들기를 계속했다. 양씨의 오랜 노력 끝에 욕하고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찾아들었고 그런 변화는 양씨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그것은 이제 모리오카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원조집 <식도원>은 현재 두 아들이 대를 이어 지켜나가고 있다.


3. 일본에 냉면의 대가들이 생겨나다!!
-“언제나 조국을 잊지 말아라"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은 조선인 부락에 모여 살며 모리오카 근처 가마이시라는 제철소, 혹은 탄광에서 막노동을 해가며 생계를 이어갔다. 해방 후에도 국교가 단절되어 많은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고 그들에게 가난과 차별의 험난한 세월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중 양 씨의 <식도원>이 명성을 얻자 재일동포들은 너도 나도 ‘제 2의 양용철’을 꿈꾸며 <식도원>을 흉내 낸 냉면 집을 열었다. <삼천리>, <명월관>, <뿅뿅사>등의 가게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리며 발전해갔다. 현재는 모리오카 시에 냉면 전문 가게가 30여 곳, 메뉴로 냉면을 내는 곳은 200~300군데에 달한다. ‘냉면’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온 변용웅 씨에게 양 씨가 남긴 말은 ‘언제나 조국을 잊지 말라’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식문화 ‘모리오카냉면’을 지키고 싶은 재일동포들. 그렇게 모리오카냉면이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기 까지는 동포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의지가 있었다. 모리오카냉면은 가난했던 재일동포에게 희망이었다.



4. 조국을 잃고 가족을 잃고
 
시대의 아픔은 <뿅뿅사> 사장 변용웅 씨의 가족사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 변 씨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도항한다. 제주도에 세 살 난 큰 아들을 남겨두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나지만 일본 땅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건 만만한 게 아니었다. 막노동, 고물상 일을 전전하며 다다미 6장(2평) 넓이의 방에서 8명의 식구가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변용웅 씨의 셋째 형 용기 씨가 1945년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하고 그 후유증인 백혈병으로 18세 때 사망한다. 셋째 형은 죽어가며 ‘내 병은 고칠 수 없냐’고 애원했다. 그 말을 잊지 못한 둘째 형 용수 씨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의사가 됐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자 수십 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은 변 씨의 부모. 세 살 난 큰 아들은 서른 살이 되어있었다. 죽어서라도 부모님 곁에서 있고 싶다던 큰 형. 지난해 세상을 떠난 큰 형은 그 바람대로 부모님과 함께 고향 제주에 묻혔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냉면, 맛보지도 못했던 조국의 맛을 연구하며 분투 끝에 연 매출 200억 원이란 성공신화를 이룬 재일동포 2세 변용웅 씨. 그의 가족도 피할 수 없는 아픔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5. 대를 이어 지켜가는 재일동포의 맛, 모리오카 냉면!
 “조국의 맛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전통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대를 잇고 있습니다.”
“냉면은 나의 일부입니다.”



  한국의 냉면이 모리오카 땅에서 독특한 맛과 모양으로 변해 활약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의 재일동포의 모습과 같다. 재일동포들은 모리오카냉면을 ‘나 자신’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모리오카냉면이 탄생한지 54년, 그 맛을 새롭게 지켜나갈 2세, 3세로의 세대교체가 이루지고 있다. 그들은 조국의 맛을 널리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대를 잇는다. 냉면 한 그릇을 내놓으면서도 뿌리를 고민했던 그들. ‘모리오카냉면’에는 오랜 세월 조국의 맛을 지키고자 한 동포들의 열정이 담겨있다.
 
 


출처 : mbc스페셜